보험사가 보험 계약을 맺을 때 ‘암 최초 발생 부위(원발 부위)를 기준으로 암을 분류한다’는 특별약관(특약) 조항을 피보험자에게 상세히 설명할 의무가 있다는 첫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원발 부위 기준 분류 조항의 의미와 해당 조항이 설명의무의 대상이 되는지에 대해 하급심의 판단이 엇갈리던 상황에서 대법원이 처음으로 기준을 제시했다. 대법원 민사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A 씨가 B 보험사를 상대로 낸 보험금 소송(2023다250746)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사실관계]
C 씨는 2015년 9월 A 씨를 피보험자 및 보험수익자로 하는 보험 계약을 B 사와 체결했다. A 씨는 2019년 1월 갑상선암과 림프절전이암 진단을 받았다. B 사와의 보험계약에는 ‘갑상선암으로 진단받거나 수술할 경우 보험가입 금액의 20%만 암수술비로 지급한다’는 내용과 ‘불명확한 2차성 암일 경우, 1차성 암이 확인되는 경우에는 원발부위를 기준으로 분류한다’는 분류특약이 포함됐다. B 사는 A 씨에게 갑상선암을 기준으로 암 진단비 400만 원과 수술비 40만 원을 합한 440만 원을 보험금으로 지급했다. 이에 A 씨는 B 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하급심 판단]
재판 과정에서는 ‘B 사에게 분류특약에 대한 설명 의무가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1심은 B 사가 “A 씨에게 2200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항소심은 1심을 뒤집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항소심은 “이 사건 암은 원발암인 갑상선암이 림프절에 전이돼 진단된 것으로서, 이를 갑상선암과 구별되는 별도의 암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B 사는 갑상선암을 기준으로 한 보험금을 모두 지급했으므로 보험금 지급의무를 모두 이행했다”고 판단했다. 또 “이 사건 약관조항이 보험사고에서 제외되는 암의 의학적인 분류기준을 명확히 한 것에 불과하고, 1차성 암에 대한 보험금의 지급을 넘어 모든 전이암에 대해 1차성 암과 별도로 보험금을 지급받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오히려 이례적”이라며 “A 씨는 이 사건 분류특약에 따른 암의 분류와 무관하게 보험계약을 체결했다고 봄이 합리적이므로, A 씨가 분류특약에 관해 설명을 들었는지 여부 등은 계약 체결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 사건 분류특약은 보험금 지급기준의 통일을 위한 금융감독원의 행정지도에 의해 마련된 것으로서 거래상 일반적으로 공통적인 것”이라며 “이 사건 분류특약은 별도의 설명이 없더라도 보험계약자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약관조항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면서 B 사에 설명 의무가 없다고 봤다.
[대법원 판단]
대법원의 판단은 항소심과 달랐다. 대법원은 “소액사건이라는 이유로 판단을 하지 않은 채 사건을 종결한다면 국민생활의 법적 안정성을 해칠 것이 우려된다”며 “이 사건 쟁점인 암보험 약관 중 이 사건 약관조항과 같은 원발부위 기준 분류조항의 의의 및 위 조항이 설명의무의 대상이 되는지에 관해 아직 대법원 판례가 없고 하급심의 판단이 엇갈리고 있으므로 법령해석의 통일을 위하여 판단한다”고 전제했다.
대법원은 이어 “이 사건 보험계약상 ‘암’의 분류기준을 정한 약관조항은 이 사건 보험계약에서 무엇을 보험사고로 할 것인지에 관한 것으로서 실질적으로 보험금 지급 의무의 존부, 보장 범위 또는 보험금 지급액과 직결되는 보험계약의 핵심적 사항에 해당한다”며 “이 사건 보험계약의 체결 여부나 그 대가를 결정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항이므로 이 사건 보험계약의 중요한 내용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 “일반인으로서는 약관조항에 관한 보험자의 설명 없이는 갑상선암에서 전이된 2차성 암이 진단된 경우에 이 사건 약관조항에 근거해 ‘암’으로 보장을 받을 수 없고 원발부위를 기준으로 갑상선암에 대한 보장만 부여된다는 사정을 예상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 사건 보험약관의 내용과 이 사건 약관조항의 도입 경위까지 종합하여 보면, 약관조항이 거래상 일반적이고 공통된 사항이어서 보험계약자가 그에 관한 별도의 설명 없이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약관조항이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등에 제시된 암의 진단 및 분류에 관한 보편적인 의학적 기준에 따른 것으로서, 금융감독원이 마련한 보험약관 개선방안을 기초로 국내의 다수 보험회사들이 활용하는 보험약관에 포함되어 널리 보험계약이 체결되었다는 사정만으로 달리 볼 것은 아니다”며 “B 사로서는 보험계약 체결 시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에게 이 사건 약관조항을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홍윤지 기자 2025-04-07 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