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이 반도체 공장에서 장기간 근무한 뒤 **골수형성이상증후군(MDS)**으로 사망한 근로자에 대해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거부한 근로복지공단의 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법원은 고인의 사망과 업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음을 인정하며, 직업성 질병에 대한 판단 기준을 한층 더 확대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위험한 작업 환경과 골수형성이상증후군 진단
이번 사건의 고인은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디클로로메탄과 같은 발암 추정 물질을 사용했으며, 이후에도 불산 등 다양한 유해산에 반복적으로 노출되었습니다. 특히 문제였던 것은 작업장의 열악한 환경이었습니다. 제대로 된 환기 시설 없이 일반 마스크와 라텍스 장갑 외에는 별다른 보호장비조차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고인은 주 60시간 이상의 주·야간 교대근무를 장기간 이어오며 면역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고인은 2017년 골수형성이상증후군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던 중, 이듬해 폐렴으로 사망했습니다. 사망진단서에는 폐렴이 직접 사인으로, 골수형성이상증후군이 선행 질환으로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고인의 배우자 A 씨는 이를 산업재해로 보고 유족급여 및 장의비를 청구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유해물질 노출 수준이 낮고 의학적 인과관계가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지급을 거부했습니다.
법원의 판결: 복합적인 유해요소와 업무상 재해 인정
그러나 서울행정법원은 근로복지공단의 판단이 부당하다고 보았습니다. 재판부는 "망인이 유해화학물질로부터 신체를 보호할 만한 보호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환경에서 작업환경측정 결과상 측정된 유해인자의 노출값보다 더 높은 수준 또는 유해인자 외에 다양한 유해화학물질에 장기간 노출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재판부는 유해인자 노출 기준이 단독으로 존재하는 경우를 전제로 한 것임을 언급하며, 여러 유해인자에 복합적으로 노출되거나 장시간 근무, 고강도 작업, 주·야간 교대근무 등 작업환경의 유해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 질병 발생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특히 고인의 주 60시간, 주 6일 주·야간 교대근무가 만성 피로와 스트레스를 유발하여 신체 면역력을 저하시키고 질병 발생 및 악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높게 보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재판부는 "누적된 장시간 근무와 주·야간 교대근무로 인해 신체 항상성이 취약하고 면역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디클로로메탄을 포함한 다양한 유해화학물질, 극저주파자기장 등과 같은 유해요소에 지속적·복합적으로 노출된 것이 망인의 신체에 악영향을 주어 골수형성이상증후군의 발병이나 악화에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고인이 입사 전 건강에 이상이 없었고, 유전적 소인이나 가족력 없이 평균 발병 연령보다 훨씬 이른 나이에 진단받고 사망한 점 또한 작업과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습니다.